본문 바로가기

평론-해체된 시간의 획-노상동(대구미술비평연구회) 2018 > 소개 정해경 현대미술


소개 HOME


평론-해체된 시간의 획-노상동(대구미술비평연구회) 201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5-08-12 12:43

본문


 

해체된 시간의 획

                                                             노상동(대구미술비평연구회)


정해경은 서예가이다.  정해경은  현대미술작가이다.  서예는 획으로 이루

어져 있다. 서예의 획은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기 위하여 또는 경계를 정하

고 구획을 나누기 위햔 행위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고 복

잡해지면서 눈으로 보는 구체적 형상을 그리는 단계에서 생각하고 느끼

는 형이상의 세계까지 표현하는 문자가 만들어졌다.


갑골문의 경우 점을 쳐서 결과를 거북의 등이나 동물의 뼈에 칼로 새겼

다.  갑골문의 획은 칼로 새겼기 때문에 날카롭고 직선적이다.  시각적으

로 단순한 선처럼 보이고, 공간을 수평적으로 분할하는 단순한 획이다.  

문자가 복잡해지고 다양화되면서 사용하는 도구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원필이며 균일한 형태의 획으로 구성된 수평적 운필의 글씨에서 방필이

며 다양한 형태의  획으로 구성된 수직적 운필의 글씨로 바뀌면서 단순

한 분할의 공간성에 복잡한 운율의 시간성이 개입하였다.  서예는 언어

문자를 표현대상으로 한다.  우리의 경우 한문중심의 언어문자에서 한글

중심의 언어문자 사용으로 바뀜에 따라 한문은 언어가 약화된 문자로 남

게 되었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의 운율이 사라진 문자만으로는 

인간의 예술적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의 서예계

현상이다.


 이렇게 위축되어가는 현재의 서단 상황에서 정해경은 현대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서예를 찾아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가창에 있는 정해경의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예

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 실험적인 작업을 했

다.'고 한다. 이번에 발표하는 작품 <무제>. 205x139cm의 평면ㅇ 입체

작품과 지름 43cm의 구로 된 작품을 설명하면서 정해경은 이렇게 말했다.


'문인화는 형태와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한 순간에 쏟아내듯 작업이 이루

어진다.  그 한 순간의 시간과 기운을 조각으로 나누어 천천히 작업을 했

다.  시간을 압축하고 많은 연습을 하여 한순간에 완성하는 문인화의 전통

적인 방법이 귀족이며 선비적이라면 시간을 조각내어 날마다 연결하는 나

의 작업방식은 보통사람의 일상생활과 연결되는 서민적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밑판을 만들고 찢은 다양한 한지를 붙이고 나이프로 세워나간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고 위에서 아래로 진행하면서 순간순간 크게 

작게, 넓게 좁게 붙여 나가면 소밀에 따라 바탕의 색이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붙이는 소밀의 밀도에 따라 밀도가 강한 부분은 자연히 튀어나와 볼

록하게 된다.  이 때에 어릴 적 범어동에 살면서 보고 느꼈던 봉분을 새롭

게 연상하게 되었다.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던 그 때에  느꼈던 봉분이 지

금은 삷과 죽음이 연결된 봉분으로 느껴진다. . . . . .'


 이렇게 정해경의 작품을 보고 설명을 듣고 돌아왔다.  이 작품을 완성

하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한 번에 두세시간을 작업하여 일곱달이 걸

렸다고 한다.  찰나에 완성하는 전통개념의 서화작품 제작시간과 비교할

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 시간이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모든 일

을 빨리 처리하는 현재의 시간개념과는 정반대이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시간성이다.  물론 공간과 시

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지만 어느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서 

현상은 달라진다.  인식과 관념에 바탕을 둔 환영공간중심의 전통미술은 

산업혁명의 물질문명발달로 인하여 체험과 행위에 바탕을 둔 실제 시간중

심의 현대미술로 변화해 왔다.  공간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없고 시

간적으로 전통과 현대의 구분이 없는 모호란 시대에 살고 있다. 반복과 순

환의 흐름 속에서도 천편일률적인 시간개념은 없다. 


정해경은 왜 빨리 완성되는 전통개념의 서화작품을 하지 않고 시간을 분

절하여 이와 같은 작품을 하는 것일까?

4fcc31bc3ae6111532400a4d29b460e8_1754970842_646.jpg


 아마도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작업이 아닌가 생각된다.   존재가 

드러나려면 존재를 덮고 있는 수많은 껍질을 벗겨내야만 한다.  

원효가 말한 '일체유심조(一切唯심心조造)'는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마음자체

를 버려야 존재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금강경사구게(金剛經四

勾偈)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

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가 다 허망하다. 만약에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안다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여래를 보는 것이다.'역시 모든 상을 버려야 존재가 드러

나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도 행위를 하지 

않으로써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존재를 드러내려면 존재가 드러나도록 수많은 행위를 해야

만 한다.  다시 말하면 존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 한

다.  정해경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된다.  시간을 압축하여 찰나에 

한 획을 그음으로써 존재가 드러나는 전통적 방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수많은 획을 긋고 쌓음으로써 행위를 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

로 나타나는 것이다.  수많은 반복의 행위가 축적되고 쌓이어 실획

이 아닌 허획이 실체오 등장하는 것이다.  행위를 한 주제의 획이 

수 없이 많아져 획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묻혀서 없는 것처럼 되

고 행위를 하지 않은 배경이 획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화면에 찢은 종이를 무수히 붙히고 세워서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

이 획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행위를 하지 않는 부분이 행위를 한 것

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  환영공간중심의 전통미술이 시각

과 지각 중심의 현대미술로 바뀌면서 수많은 주의와 사조들이 명

멸하였다.  행위 중심의 평면미술은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정점으

로 설치로, 개념으로, 비디오로, 뉴미디어 등으로 다양하게 전개

되고 있다.  이 시대를 감당할 새로운 평면미술이 절실하게 요구

되는 시점이다.


 동양미술에는 행위를 하지 않고 남겨둔 여백개념의 역사와 전통

을 갖고 있다.  여백이 단순한 여백으로 남아있지 않고 주제로 등

장하여 동양정신의 추상미술이 서양중심의 추상미술의 자리를 대

신해가는 이 시점에 정해경의 해체된 시간이 만든 무형의 획은 자

못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