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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버리면서 취하다-김향금(대구미술비평연구회) > 소개 정해경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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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버리면서 취하다-김향금(대구미술비평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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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08-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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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면서 취하다

                                김향금(대구미술비평연구회)


 정해경은 끈질기게 육체적 노동을 임서에 쏟았다.

중국 청대 중기의 화가인 등석여(登石如 1743년~1805년)가 자연의 정취를 노래한 '백씨초당기'(白氏草堂記)를 오랫동안 임서를 했다.   등석여의 글씨에 정신적인 의미와 마음의 상태까지, 그 시대마저 깊게 교감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끊임 없는 반복된 붓질이었다. 법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끊임없이 반복된 행위 속에서 물리적인 것을 넘어 행위자체도 잊게 되고, 그 흐름 속에서 자아도 사라지고 마는 무법(無法)의 세계가 진정 그가 얻고자 한 세계가 아닐까한다.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는 그가 놓아야만 이루어 질 수 있는 세계였기에 그는 넘치도록 펼치고 지우고, 숨을 고르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이루고자 했다.

 

 한 달 여간 임서를 끝낸 정해경은 또 다시 세 달간 자신을 조절해 갔다.  작업의 마지막 순간까지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작업으로 옻칠하는 작업을 병행하기도 했다.  이는 주관적인 자아가 작업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된 노력들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페이스 조절에 가장 신경을 쓰면서 작업을 해 나갔다.  그에게 있어서 서예란 무엇인가. 20대에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의식은 정형화 되고 획일화되고 전통화되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서예의 전통성을, 기존의 질서를 취함으로써 도리어 객관성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인 반복의 행위가 자아를 잊게 하는 무심(無心)을 만들어 냈다.  그 객관성을 바탕으로 정해경은 서예의 질서와 규칙을 허물어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의 삶의 방식마저 '질주'라는 제목으로 개연성을 가질 수 있듯이 스승이 없는 이는 스스로를 견제하고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과 무엇이든지 전체가 보여야 안도감을 느낄 수있다는 그의 성격이 종합하여 스스를 틀을 허물고자 애썼고 그것이 작업의 끈을 팽팽하게 당겨 온 것만 같다.

 정해경의 임서한 글씨들은 오려지고 다시 꼴라쥬 되면서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 낸다. 한 번 지나간 자리에 온전히 남는 서예의 선들은 쓰는 이의 감흥이 있는 그대로 들어나지만 그는 한 획에 그어진 수묵이 종이에 깊게 자리한 감성적인 흔적들을 거침없이 가위로 오려냈다.  마치 자신의 본질을 지워내듯이 그것들을 지워내면서 다른 이상을 꿈꿨다.  스스로 머무르지 않겠다는 이상, 질주의 이상, 새로운 존재를 향한 이상들을.


이미 글씨라는 존재를 놓아버린 그의 글씨들은 글씨에서 점으로,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공간으로 확대되면서 본래의 면목을 띄어 넘은 다른 법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기에 이미 그의 작업은 그 만의 개념을 가진 현대적 작품이 되고 만다.   관념의 세계에서 자유를 얻고자한 노력 속에서 획득한 그 만의 재구성되고 재 조형된 먹물을 머금은 그의 점이나 선들은 회화에서의 의미와 다를 바가 없는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 되어 종이와 검은 글씨라는 본질을 잃고 나서야 날이 세워지고, 누여지고, 끼워지면서 화면을 조응하는 새로운 물질이 되고 만다. 그것이 그의 정신이고 신념이다.

[2014 창작과 비평. 대구미술비평연구회 평론집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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